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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들은 방문객 2,000명 중에 한분이 남겨주신 변산여행 후기 입니다.
여행 가기전에 질문 남기기는 쉽지만 다녀와서 글 남기기는 상당히 어려운것 같습니다. ^^;
어려운거 마다않고 글 남겨주신 분들께 감사합니다.

전체 | 일반 (37) | 최고였어요 (67) | 좋았어요 (103) | 별로였어요 (5) | 다신안가요 (8)
내 / 용 / 보 / 기
글작성자
 박흥열 2003-10-29 17:58:37 | 조회 : 2860
제      목  변산반도를 가다(3)

기간 : 2003.10.18..13:30 ~ 2003.10.19..22:00 (1박 2일)
숙박 : 정든민박
식당 : 모항포장마찻집(상호를?), 군산식당, 변산온천산장
이동 : 자가용
이동로 : 모항-정든민박-곰소염전-이름모르는 조선소-격포항-변산해수욕장-새만금방조제-해창갯가-지석묘

1. 선운사, 아니 변산
2. 모항에서 지는 해
3. 정든민박 정든주
4. 곰소, 퍽 쓸슬한 소금밭
5. 학생해양수련원지나 왼쪽 길에 조그만 조선소

----------------
6. 격포항 쌍등대

다시 또 해변도로를 타고 줄레줄레 돌아 간다. 말이 해변도로지, 사실 해변을 그리 흔히 보여주는 도로는 아니다. 그게 좀 아쉽긴 하지만, 모항 넘어 올 때, 많이 봤으니까, 뭐.. 얼마 가지 않아 격포가 나왔다. 일단, 식후경이라고 군산식당을 찾는데, 변산서중 한상관 선생님 홈페이지(http://pyonsan.netian.com/home1.htm)의 지도가 대단히 도움이 되었다. 좌로, 우로 얼추 어판장은 찾았는데, 군산식당을 찾을 기준이 될 파출소나 터미널은 보이지 않는다. 내가, 선생님의 격포 지도를 보면서 주욱 소규모 횟집들이 줄('나래비'는 왜말입니다) 서 있고, 군산식당정도면 꽤 큰 식당이어서 한눈에 보일 것이라고 기대했던 근거가 뭔지 모르겠다. 군산식당은 보이지 않는 채, 의외로 대형식당이 즐비했다. 그러나, 뭐 큰 걱정일까. 커봐야 격포가 얼마나 크겠나, 그러는데, 마중나온 사람처럼 아내의 눈에 파출소가 나타났다. 파출소 앞을 지나 왼 쪽으로는 더 뭣이가 없다. 바로 바다로 가는 다리라서, 오른쪽 골목으로 접어든다. 골목 끝자락에, 거기 있다. 군산식당!

첫눈에 외모는 아니었다. 추녀 끝은 땅바닥에 닿을락 말락하고, 그 헌 지붕에 세월의 더께가 앉아 햇살과 놀고 있으며, 손 때 반질반질한 기둥은 굵직하여 뚝심이란 무엇인가를 생각케 하고, 낡아서 곧 넘어지고 싶은 입간판 하나 정도가 간신히 그 전설의 고향임을 증명해 주는 정도가 아닐까.. 뭐 이런 말도 안되는 공상을 하고 있던 내게, 너무 반듯하고 정말 특색없어 보이는 무진장 평범한 식당이 하나 '넌 또 뭐냐?'그런 표정으로 거기 묵지근히 앉아 있었던 것이다.

여기가 정말 맞을까? 진짜 군산식당은 어디 다른데 저 골목 모퉁이 외진 곳에 숨겨져 있는 게 아닐까? 차를 댈곳도 마땅 찮은 골목에 어렵사리 식당 문 앞에 주차를 하고, 안으로 들어 선다. 백반을 시켰다. 주방이 문 옆에 있고, 주방 뒤로 돌아가며 바닥 테이블이 침상으로 변하고, 더 가면 군산해물탕집이다. 뒤로 옆집하고 연결되었을 뿐 아니라, 식당도 공유되어 있다. 그러고 보니 간판만 다른 한지붕 두집인가 보다. 그러거나.. 금새 반찬이 깔리는데, 그제서야 이집이 군산식당이 맞다는 걸 알겠다. 찬이 한 열가지 가까이 된다. 김치, 물김치, 갓김치, 마늘멸치볶음, 호박나물, 말린칼치조림, 된장찌게, 순두부찌게, 조기구이, 계란후라이, 콩나물무침, 황석어젓, 오징어젓, 간장게장, .. 슬프지만, 더 기억이 안난다. 전체적으로 간이 적당하니 짭조름하고 내용이 맛있다. 찬 하나 하나가 다 돋보이는 맛이고, 누군가 그랬듯이 남는 찬이 아까울 지경이다.

실컷 먹었다. 여행지에서 만족스런 밥을 먹을 수 있었다는 것만큼 흐믓하고 손해 안본거 같은 일이 또 있으랴. 대개 나그네란 벼르고 별러서 떠난 이들이요, 아끼던 돼지 뜯어 갖고 떠난 이들이니만큼, 일각이 아깝고 일원이 아까운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의 신경은 의외로 예민하게 마련이고, 눈꼽만큼만 손해보는 일이 생겨도 촌각을 참지 못하게 되며, 약간 손해본 느낌이 들면 향후 여행기를 남길때, 사건은 침소봉대되기 마련이다. 그 나그네에게 손해의 기분을 느끼게 했던 관광지의 집주인은 '본인의 서비스정신 미비로서 그 지역을 전부 도매금에 초토화 시킨' 그야말로 천하에 다시없는 나쁜이가 되게 마련이기도 하다. 화장실까지 고맙게 이용하고, 가게를 나오는 데, 문 앞 붉은 물통에 조기가 한가득 목욕중이다. 얼었던 걸 녹이는 가 본데, 이마에 다이아몬드표시가 확연하다. 먼데서 얼어 온 망정 상위에 놓는 찬이라고 참조기를 쓰는 개비다. 날은 그지 없이 맑다.

차를 살살 몰고 다리를 건너는데, 사람들이 다 걷는다. 다리 전에 파킹을 해야 하나 싶은데, 저 안에 주차장이 있어 보인다. 그 안에까지 갔더니, 차를 댈 곳이 없다. 돌려 나와 다시 다리를 건너 어판장 앞에까지 나와 파킹을 하고, 걸었다. 다리를 반쯤 가다보니, 왼쪽은 하릴없는 바단데, 오른쪽의 절벽이 영 심상치 않다. 아, 저거이 바로 채석강이 아닐까.. 안내 간판 하나가 없다. 다만 한쪽이 막힌 땅쪽으로 가 있고, 한쪽이 열린 바다쪽으로 가 있어, 다리를 걷는 이 몇십미터의 길을 강이라 하면 강일수도 있을 따름인 정도다. 다리를 지나 주차장 중간쯤 가다 보니 가슴에 패찰을 한 학교 선생님들께서 소풍나온 학동들처럼 우둘러 서 있고, 절벽에 걸린 소나무 한그루와 그 아래 해식동굴을 연신 가르키며 한 사람이 이 범상치 않은 장소의 뭔가에 대해 기인 설명을 한다. 몇몇은 카메라를 눌러 대고, 어떤 이는 아래 바닥에 내려가 있다. 카메라가 없어서 슬픈 우리는 눈으로 찍고 또 찍으며 그 곳을 지났을 뿐이다. 길 끝에 매표소가 있다. 여기가 바로 채석강이라는 것과, 이 채석강을 들어가 보려면 '돈'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제야 잊지 않고 챙겨온 어제의 '주차권'을 내 밀며 '변산국립공원 입장료라면 어제 내소사 들어갈 때, 냈노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어제것이라도 오늘 써도 된다고 그 아저씨가 그랬다'는 묻지도 않은 부연설명까지 했다.

"아저씨, 이건 주차권이고요, 여기서 받는 건 입장료예요!"

그제야, 나는 비로소 그게 주차권이며, 입장료와는 본이 다른 물질임을 깨달았으니, 내 아둔함에 화도 안날 지경이었다. 이는 필시, 여행의 부푼 기분이 무언가 시력과 판단력을 흐리게 하는 '헤벌레프로피론'이라는 흥분성 물질을 내 안에서 분비하여, 일시 나를 비정상적으로 만들었던게 분명하다. 아이고, 모르면 죽어야 한다. 채석강으로 내려가는 몇 개의 계단을 두고 나는 민망하기도 마련이거니와, 채석강 물이 아직 덜 빠져서 나중에 오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안내를 받으며 얼른 방조제쪽으로 나왔다. 그건 공공화장실을 돌아 두어개의 계단을 오르면 시작되는 길이었는데, 계단 초입부터 얼마나 되는 지 모르는 길을 포장노점이 줄지어 있었다. 계단을 막 오르자 마자, 한 컷에 3000원 하는 사진노점상 아저씨가 계셨는데, 카메라가 없는 우리는 여기서 이 여행의 유일무이한 사진 한장을 남기게 된다. 이 후기를 쓰면서 나도 사람인데, 어찌 이런 저런 사진들을 덧붙여 꾸미고 싶지 않았으랴마는, 이유는 이 뿐이었다. 이 긴 글에 사진이 하나도 없는 이유는 그런 까닭인데, 그 한장의 기념사진조차 햇빛이 눈부셔 그만 다 감고 찍어 버렸던 것이다. 그 참 이상도 한 것이, 거기서 그날 인화 전에 촬영한 필름을 모니터로 봤을 땐 분명 아주 괜찮아 보였는데, 나중에 찬찬히 들여다 볼수록 사진속에서 나를 보는 나의 눈이 자꾸 감겨가더니 지금은 아주 감고 있는 모습으로 보인다. 이 또한, 그 한장의 사진을 올릴 수 없는 연유가 되겠다.

방파제인지 방조제인지 아직도 모르겠다만, 아뭏든 꿈 속인양 그 길을 걷고 있었다. 오른쪽은 테트라포트(소위 '삼발이'라는 방파제에 걸쳐진 세발 구조물)가 방파제 끝까지 상이용사의 무덤처럼 길게도 깔렸고, 왼쪽은 석축(돌벽)인데, 건너 쪽 방파제와 이쪽 방파제가 두팔을 안으로 오므린 모습으로 바다에서 만나고 있었다. 그 방파제의 두 끝에 이쪽은 흰 등대, 건너쪽은 붉은 등대가 마주 보며 서 있고, 두 방파제의 안쪽은 작은 고깃배들이 햇살을 반사하는 잔잔한 고요속을 평화, 그 자체인것 처럼 떠 있었다. 그것이 격포항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오면서도 누누이 봐 왔던 바이지만, 고깃배들은 하나같이 '핵폐기장 반대'라는 그룹의 소속이었다. 모두가 그 깃발을 달고 있었고, 심지어 이곳에 들어 올때 교량도 그 깃발을 달고 있었으니, 마침 격포항은 생사를 건 결전의 와중이었던 것이다. 내가 느끼는 이 꿈꾸는 바다는 그 꿈을 잃지 않고 오래오래 이 바다의 사람들을 지켜 주려고, 조금씩 조금씩 뒤앓이를 하며 인간의 욕심을 밀어내느라 조용히 바빴던 것이다. 평화로운 전쟁터라는 말을 나는 떠 올리고 있었다. 나는 여기 오기 전에도 부안사람들과 위도 사람들이 얼마나 격렬하고 처절하게 싸우고 있는지 중앙 뉴스를 통해서도 여러번 보아 왔었으나, 와서 보니 사람들만 싸우는 것이 아니었다. 온 부안과 변산과 위도가 바다와 머리를 맞대고 이 땅의 사람들을 지켜주려고 싸우고 있는 것 같았다. 저 반짝이는 바다의 비늘이 보여주는 평화는 어느날 노여운 바다가 세울 결기를 예언하기도 하는 것이었다. 이 전쟁에 대한 땅과 바다의 참가는 내 머릿속을 흐르는 한 순간의 상념이었을지언정 생각할수록 감격스런 풍광이었다.

포장 회 노점(?길다..)들은 방파제의 반까지만 오고 있었다. 그 나머지 반은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 간혹 낚시를 드리우거나, 어떤 남자가 테트라포트 위에 앉아 상념에 잠기거나, 테트라포트에 들어가면 위험하니 책임질 수 없다고 군수가 써 박은 푯말이 서 있거나, 자유롭게 오고 가며 걷는 이들이 있었다. 노점이 없는 길은 폭이 꽤 넓어보였는데, 길 끝 등대는 견우와 직녀처럼 만나지 못하고 서로를 그리며 붙박혀 서 있었다. 두 등대의 가운데에는 넘실대는 바다가 긴 허리를 추스리고 어슬렁거리며 지나가고 있었고, 푸른 물결에 하얀 상처를 남기며 뚜우뿌우 기적을 울리는 입항의 배도 있었다. 빨간등대에도 그럴까? 하얀등대의 몸은 온통 그리움과 사랑의 맹세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굉장히 높은 곳에까지 그런 말들이 씌여 있었는데, 그건 너무 높아서 사람이 올라가 쓴것 같지는 않았고, 어느 조용한 밤에 등대가 제 스스로 제 몸에 맹세를 새겼던 것은 아니었을까 싶기도 했다. 빨간 등대에게 보여주려고.. 그런데, 수줍었던지, 글씨는 약간 비스듬한 곳에 있다. 빨간 등대가 볼 때는 안 보이는 옆구리쯤이다. 뭐라고 써져 있더라...? 가물가물한데, 아마도 "영숙아, 널 영원히 지켜줄께!"..정도 였던것 같다. 영아던가? 뭐 누군들 어떠랴, 빨간 등대의 이름이 뭐건 간에 그건 내 알 바 아니고, 암튼 그런 뜻을 온 몸에 새기고 이 밤도 그 하얀등대는 연정의 불빛을 깜박이고 있을지 모를 일인데..

거기서 다시 돌아나와야 한다. 더 갈 수 없다. 오른쪽 바다에서는 미친듯한 모터 보트가 저와 비슷한 사람들을 싣고 미친듯이 내달리며 괴음을 지르고 있었다. 쳐다 보는 것만도 무섭다. 내 훌륭하던 기가 긴 여행에 쪽 빠져 버린게 아닐까? 왠지 나는 테트라포트에 올라가는 것도 두려울 만큼 기가 죽어 있었는데,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평길가듯 그 빈 구멍위를 지나다니고 있었다. 내가 가는 어떤 길도 저렇게 아득한 구멍이 곳곳에 뚫려있을 것이다. 세모나 네모로 된 아가리를 벌리고, 어서 떨어져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어제 술을 마신 티를 내는지 하필 그 멀고먼 방파제 끝에서 배가 살살 아파 오기 시작하더니, 화장실이 그리웠다. 화장실이 그리워 지자 마자, 모터보트의 굉음이건, 사자바위건 뭐건 하나도 안 멋있다. 아주 긴급한 건 아니었지만, 사람이란 이 모양 아닌가. 돌아가야 했다. 등대를 두고, 바다를 등지고, 위도에게 안녕을 고하고 타분타분 걸었다. 포장 회 노점은 주로 어패류였다. 밀면 떨어져 죽을 것 같은 길을 오가며 키작고 단단한 관광아줌마들은 마구 치고 밀고 지나갔다. 아, 장말.. 아줌마!

화장실이 얼마나 더러웠던가 기억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너무 선연하다. 마치 음주운전으로 교통사고가 나서 깨지고 불탄 차를 전시하듯이,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기 위한 관광정책의 일환으로 화장실을 더럽게 쓰면 이렇게 된다는 걸 전시하는 일종의 전시관 같다. 내 힐끔 한번 봤을 뿐인데, 웬간한 취중이 아니면 저기 못쓰지 싶다. 최소 한 다섯병은 마셔야 하지 않을까... 다리를 건너 둘레둘레 찾는데, a동인가 b동인가 뒤에 화장실이 있었다. 어떤 사람이 나를 떡 보더니 화장실이 거기 있다고 알려준다. 점심먹은 관광객을 부르는 사람이었던 거 같은데, 난 정말 아무말도 않했다. 참, 나..

그러나, 우리는 점심으로 반지락죽을 먹어야 하는 일정이다. (나중에 이 후기를 올리느라 홈검색을 하다가 비로소 알았다. 김상훈님의 집이 이곳 수협 위판장 66호에 있었다는 걸.. 그런 줄 알았으면 거기서 회로 아점 먹고 올라가다, 반지락죽으로 점저를 먹었을 건데..^^ 안타깝지만, 우리의 인연은 이게 끝이 아니다. 반드시 그렇다.)그러므로, 온갖 미련을 접어 두고 격포를 떠난다. 나는 격포에 채석강이 있어서 아름답다기 보다(우리는 채석강을 못 들어가 봤지만, 방파제에서 먼 발치로 봤다), 두개의 등대와 강아지처럼 검실거리는 바다와 핵과 싸우는 사람들이 있어서 아름다운 항구로 기억 되리라. 먼 옛날에 곰소가, 줄포가 그랬던 것처럼.. 활어만큼 싱싱한 사람들의, 바다만큼 깊은 근심과 갈매기 만큼 높은 노래가 살고 있는, 그래서 더 아름다운 항구로 두고두고 기억되지 싶다.


7. 어라? 변산해수욕장


이제 부부식품을 찾아야 한다. 어느 주부가 김치를 담그다 액젓을 과다하게 쏟았는데, 그래도 살살 묵으며 김치가 맛있었다는 그 집 액젓이다. 물안타고, 3년이상 묵히고, 동네 선어만으로 ㅈ액젓을 만드는 세가지 원칙을 지키는 곳이라니, 그 기대감이야 엔간했으랴. 이 길을 조금 가다가 보면 보일까 왜 안보이지 그러면서 구불레팔불레 가는데, 나올 때쯤인데 안나온다. 이정표도 없다. 존화를 해 볼까 하다가도 그냥 찾아가야 더 멋있을 거 같다. 나는 나그네 아니냐. 내 멋대로 가고 싶은 자유가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이상한 생각이 굉장히 후회스러운데, 아뭏든 그 순간 그렇게 콧노래 부르며 길을 갔다.

안되겠다. 기대보다 멀리 온 것 같다. 인제는 길을 잡고 물어 봐야겠다. 이러는데, 꼬마가 쉬마렵단다. 마침 노변에 간이 화장실이 있길래, 그리고 마침 주차공간도 되길래, 차를 착 세웠다. 그래, 그래, 뭐 어려우랴, 쉬하고 가자. 나는 여유 같은 걸 지긋이 즐기고 있었던 참인데, 내려서 쉬를 하고 보니 여기도 뭔 해수욕장이다. 아하, 여그가 보름 그믐마다 하섬으로 가는 모세의 길이 열린다는 거긴가 보다. 요 근처에 부부식품이 있다 들었으니, 가서 물어보자. 몇 그루의 소나무를 지나 해변으로 다가가는데, 갈수록 백사장이 넓어진다. 안내판을 보니 웬걸, 어라? 변산해수욕장이네?

어쩌나. 이미 지난 일이다. 돌이킬수 없는 인생의 그 무엇처럼 도달해야 했던 지점을 지나와 버렸다. 하니 어쩌랴, 모르는 길을 부부식품만 찾아 헤멜 수도 없는 일이고, 가야만 하는 길이 앞에도 멀었으니, 놀다가자. 철지난 해수욕장이라도 사람들이 꽤 있었다. 원체 유명한 해수욕장이니 그런가 보다. 모래사장이 단단하다. 낮에 물이 빠지는 시절이라서 물이 엄청나게 멀리 가 있다. 이곳은 아침에 본 조그만 해변과 달리, 깨진 뭣들이 군데군데 있다. 사람의 발자국은 언제나 저렇게 깨진 뭣으로 남는 것인가.

한참을 놀았다. 아이들은 언제 어디서나 너무 잘 논다. 하늘과 놀고, 물과 놀고, 조개를 주으며 놀고, 모래와 놀고, 간간이 흉칙한 무늬로 무장한 불가사리도 주웠다. 등때기가 꼭 뱀껍질같은 초록색과 밤색이 얼룩덜룩한 불가사리였는데, 이 흉한 놈이 맨 살뿐인것 같아도 단단한 조개를 까먹는 다는 거 아닌가. 맨살 뿐인 조개가 자신을 지키느라 단단한 껍데기를 뒤집어 썻는데, 맨살뿐인 불가사리에게 잡아 먹힐 줄이야 알았겠는가.. 아주 작은 소라게(얘는 또 단단한 껍질을 을 갖고도 남의 껍질을 덧쓰고 다닌다. 참 세상이란..)가 열심히 부지런히 걸어가다가 잠시 진도를 방해 받기도 했다. 아이들은 아무 조개나 다 이뻐했다. 식용의 뒤끝 같은 굴껍질도 이쁘다고 했다. 배만 안고프면, 전쟁터에서 만나는 탄피도 이쁘다고 할 나이였다. 갯바위에도 가서 놀았는데, 따개비도 보고, 미처 밀물을 따라가지 못한, 그래서 갯바위에 갇혀버린 불행한 조개도 하나 발견했다. 어른들의 눈으론 아프게 찾아도 안보일 물건들이었다.

아들은 연신 모래사장에 그림도 그리고, 글도 썼다. 신발따위는 젖어도 몰랐다. 아마도 갯벌체험의 일환일 듯한, 어른들이 한 주민을 따라 호미를 들고 갯모래를 파는 것도 구경했다. 조개가 발견되었는지는 관심밖이다. 이 멀고 먼 바닷가 놀이터가 아이들의 꿈속에 알알이 들어와 박혔을까? 해수욕장의 모래는 밟으면 푹푹 빠지는 것만 있는 줄 알았던 나였다. 이곳의 모래는 밟으면 밟은 자리만 하얗게 말랐다가, 발을 떼면 금방 출렁출렁 물을 머금었다. 이걸 연장하면 걸음을 뗄때마다 발 주변이 환히 빛난다. 사람들이 덜 있는 곳에서는 갈매기들이 내려 앉아 모래사장을 걸었다. 모래 사장을 걷는 모습으로 갈매기에게도 쓸슬함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사람들과 똑 같았다. '이 멋진 모래사장 바닷가에 와서 홀로 걸으며 무슨 생각을 해야 하나, 무슨 생각을 해야 더 쓸슬한 냄새가 날까..' 뭐 그런 고민을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아무도 모르게 아내와 뽀뽀도 했다. 애들이 발치에서 조개를 줍는 사이, 아내의 어깨를 안고 먼 바다를 바라보는 척 하다가, 번개처럼, 번개처럼... 가슴이 두근두근한, '넓고 넓은 바닷가에' '애너밸 리'가 생각났다면 어떤가. 만년쯤 전에도 먼 조상은 이 변산의 바닷가에서 조개를 파 먹으며 힘쎈 자연이 붙여준 이 뽀뽀를 했을 것이다. 만년짜리 공감대, 이 맛에 애인데리고 바닷가를 오는 구나.. 난 그제야 알았다는 거 아닌가. 우리 연애할 때는 디랍게 가난해서, 어디 감히 바닷가를 갈 엄두도 못냈었다. 그날 그날의 끼니를 채울 수 있으면 감사할 따름이었고, 우리의 전재산은 남비하나, 수저 두벌, 꽃무늬 담요 두장, 비키니 옷장 하나..이런 식이었다. 이백부의 신문을 돌려서 연탄을 들여 놓고 나면 흐뭇했고, 누가 버린 자전거가 고쳐서 탈만 했으면 기뻣다. 누가보면 지지리도 궁상이었다 할 테지만, 돌이켜 아름다우니 됐다. 돌이켜 아름답기 위해 우리는 그동안 참 바빴고 잘 참았다. 지금 그 정도 궁상이 아니니 고맙고, 고마운 일일 뿐이다.

가만히 바라보면 물이 슬금술금 들어 오고 있다. 밀었다 빠졌다 하면서, 그 조그만 소라게의 발걸음처럼 해변을 향해 전진하는 것이다. 우리도 또 가자. 밀고 당기면서 우리도 조금씩 조금씩 전진해야 할 삶이 있다. 여기선 아침의 바닷가 처럼 아무것도 주워갈 만한 건 없었지만, 잘 놀았고, 배가 고파오는 것도 같았다. 가자, 가자고 우리도 슬금슬금 바다를 떠났다. 아이들은 반대할 겨를도 없었다. 우리를 따라다니며 발밑만 보고 놀다보니 모래사장을 빠져나와 있었으니까..


8. 바다의 무덤 새만금 방조제
9. 변산온천산장 반지락죽 한그릇
10. 해창 갯가에서의 굴맛
11. 고인돌, 아니 낑낑 돌
박흥열
아, 정말 고만 쓰고 싶은거.. 일박이일의 여행에 후기가 지겹게도 길다. 넘들이 보면 무슨 한달정도 갖다온 줄 알겠다. 고만 마치고 싶은데, 왜 이리 끝이 안난단 말이더냐.. 10.30. 10:35 -  

3박4이 여행도 그냥 즐거웠다는 말한마디로 추억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1박2일 여행도 이렇게 멋지게 간직될수 있는거군요. 세번째글 잘~ 봤습니다. 부인이랑 아이들 참 행복하겠어요. 나중에 시간 넉넉하게 잡고 흥열님 글 보고 글 잘쓰는법을 연구해야겠습니다.^^ 네번째 글 시간나실때 또 올려주실거죠? 10.30. 01: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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